어느 날 우리집에 강아지가 찾아왔다

열두 살 반려견과 사는 가수 오티스림.

우리집 가계일기 100개의 가족에게는 돈을 쓰는 100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1인 가구와 신혼부부,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한 달 가계부의 금액은 같아도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죠. 우리 곁의 다양한 가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가계를 꾸려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가수 오티스림

흑인 음악을 좋아해 음악을 시작했고, 2021년부터 제 이름으로 곡을 발표해왔습니다. 2026년 6월에는 앨범 <사생아>를 발표했어요. 제게 음악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에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리를 많이 고민했다면, 정규 앨범에서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음악과 아직 꺼내지 못한 이야기에 집중했어요. SNS도 지우고 주변과 연락도 줄인 채 6개월 정도 작업했죠. 40여 곡을 만들고 그중 9곡을 골랐어요. 그 시간을 함께한 존재가 열두 살 반려견 시엘이에요. 작업하다 거실로 나오면 혼자 누워 있는 시엘을 한 번 보고, 쓰다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곤 했어요. 별것 아닌 순간인데 저한테는 꽤 큰 환기였죠. 제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곡 ‘우리 집 강아지 귀여워’도 시엘에게서 시작됐어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에 온 강아지가 어느새 제 생활과 가족, 음악 한가운데 들어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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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리 집에 강아지가 왔다

시엘이를 처음 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쯤이었어요. 학원을 마치고 밤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 앞에 조그마한 흰색 생명체가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저는 아무 이야기도 들은 게 없었거든요. 현관에 서서 한 10초쯤 그대로 얼어 있었어요. “얘 뭔데?”라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데려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엘이와 처음 만났죠. 사실 저는 강아지를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처음 1~2년 동안은 같이 살면서도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같이 밥 먹고, 거실에서 마주치고, 산책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냥 가족이 되어 있더라고요. 시엘이를 만나기 전의 저는 냉소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 생명에게 애정을 주고 표현하다 보니 제 안에도 이런 감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요즘은 주변에서 따뜻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그런 부분도 시엘이와 살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가족 분위기도 달라졌어요. 저는 외동아들이고, 사춘기 때는 부모님과 대화가 많지 않았어요. 시엘이 온 뒤에는 자연스럽게 거실에 있는 시간이 늘었죠. 아버지는 동네 강아지 모임의 회장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이세요. 저도 모임에 따라다니다 보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요. 사람 셋이 못 이룬 가족의 화합을 강아지 한 마리가 해낸 셈이죠.

뛰어노는 반려견 시엘이의 모습
뛰어노는 반려견 시엘이의 모습

지금은 부모님과 돌아가면서 산책을 시켜요. 저는 2~3일에 한 번 정도 나가고요. 예전에는 한 시간을 넘겨 걷기도 했는데, 시엘이 나이가 들면서 요즘은 40분 정도가 적당해요. 저는 이어폰으로 앨범 한 장을 듣고, 시엘은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걷습니다. 가끔은 제가 길을 정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매일 같은 길만 걸으면 강아지도 지루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예요. “오늘은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가봐” 하고 그냥 따라가는 거죠. 어느 날은 번화가로 가고, 어느 날은 아파트 단지만 계속 돌아요. 목적지는 꽤 랜덤합니다. 뒤에서 시엘이를 따라가면 궁금해져요. ‘얘는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반려견 시엘이가 산책하는 모습

식비, 장난감, 미용 그리고 병원비

시엘이와 오래 살다 보니 제 소비에도 자연스럽게 시엘이 몫이 생겼어요. 큰 병원비는 부모님이 부담하고, 저는 간식이나 장난감, 건강용품처럼 일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주로 삽니다. 저는 계획적으로 쇼핑하는 편은 아니에요. 길을 걷다가 반려동물 용품점이 보이면 들어가 수제 간식을 사고, 귀여운 장난감이 있으면 하나씩 집어와요. 문제는 제가 귀엽다고 해서 시엘이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신나서 사갔는데 시엘이가 쳐다도 안 보면 ‘아, 이건 그냥 내 취향이었구나’ 싶어요. 평균적으로 시엘이에게 한 달에 3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 것 같아요. 미용은 한 번에 15만~20만원 정도라 2~3개월에 한 번 하고, 그 사이에는 어머니가 집에서 조금씩 다듬어주세요. 가장 큰 지출은 아무래도 병원비예요. 병원에 한 번 가면 기본적으로 20만원 정도 들고, 검사가 추가되면 40만~50만원까지 올라갈 때도 있어요. 얼마 전에는 산책하다 시엘이의 발톱이 빠진 적이 있어요. 피가 나고 낑낑거리는 걸 보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갔죠. 그렇게 아픈 모습을 보면 병원비는 생각이 안 나요.

평소라면 몇십만원을 쓸 때 한 번쯤 고민하겠지만, 시엘이 아플 때는 ‘얼마지?’보다 ‘지금 얘한테 뭐가 필요하지?’가 먼저예요. 시엘이 병원비는 제가 돈 생각을 하지 않고 결제하는 유일한 소비인 것 같아요.
시엘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모습

특히 건강과 먹는 것에는 아끼고 싶지 않아요. 시엘이는 웨스트 하이랜드 화이트테리어라는 종인데, 선천적으로 피부가 예민해요. 피부에 맞는 사료를 찾느라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종류를 바꿔봤어요. 간식도 가공식품보다는 수제 식품을 고르고, 집에서 연어나 오리를 직접 말려주기도 하고요.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필요한 것도 생겨요. 요즘은 마룻바닥에서 자꾸 발이 미끄러져서 발바닥에 바르는 보습제를 쓰고 있어요. 발바닥을 조금 덜 미끄럽게 해주는 제품이에요. 어릴 때는 귀여운 물건에 눈이 갔다면, 이제는 ‘이게 시엘한테 정말 도움이 되나’를 먼저 보게 돼요. 비싼 것이 늘 정답도 아니더라고요. 집에 시엘 방석이 네다섯 개쯤 있는데, 정작 시엘은 어릴 때부터 쓰던 낡은 방석만 찾아가요. 새것을 사다 바쳐도 선택은 늘 그 방석입니다. 거금 들여 장만한 유모차도 안 타고요. 덕분에 저도 조금 배웠어요. 사람 눈에 좋아 보이는 것과 시엘이가 좋아하는 건 다를 수 있다는 걸요.

지금은 기준이 꽤 분명해졌어요. 건강과 먹는 것에는 필요한 만큼 쓰고, 다른 물건은 정말 필요한지 한 번 더 봅니다. 많이 사주는 게 꼭 잘해주는 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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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 없는 삶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시엘이 때문에 제 소비를 줄인 적은 거의 없어요. 원래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태우고, 커피도 거의 안 마셔요. 운동하고 음악 하는 게 생활의 대부분이라 소비가 많은 편은 아니에요. 대신 음악 작업에 돈이 크게 들어갈 때가 있어요. 앨범 하나를 만들면 함께 작업한 사람들에게 페이를 지급하고, 제작 과정에서도 여러 비용이 생기죠. 정규 앨범을 만들 때는 수천만 원이 들기도 해요. 평소에는 조용하던 통장이 음악을 시작하면 갑자기 바빠지는 거죠. 뮤지션의 생활 자체도 규칙적이지 않아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매달 같은 수입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까요. 갑자기 공연이 잡히기도 하고, 촬영을 준비해야 할 때도 있어요. 작업을 시작하면 예상하지 않았던 비용이 생기기도 하고요.

시엘이와 사는 일도 비슷해요. 사료나 미용비처럼 미리 예상할 수 있는 돈도 있지만, 갑자기 아프거나 다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발톱이 빠졌던 날처럼 바로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런 순간에 “이번 달은 좀 빠듯하니까 다음 주에 가자”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에게 돈을 모은다는 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하는 일이에요. 시엘이가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할 때도, 제게 갑자기 공연이나 촬영이 생겼을 때도 바로 움직이려면 몫 돈이 필요하거든요. 프리랜서 뮤지션으로 살면서 그런 순간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을 모아두는 습관이 생겼어요.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가 가장 중요한 건 아니에요. 필요한 순간에 돈 때문에 중요한 선택을 미루지 않는 게 더 중요해요.

음악을 만들고 싶을 때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 시엘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바로 병원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것. 저는 그런 선택을 위해 돈을 관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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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곡 ‘(Let me go) Nana’ 뮤직비디오 갈무리

함께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시엘이는 열두 살이에요. 열 살을 넘기고 최근 2년 사이에는 체력이 떨어지는 게 조금씩 눈에 보여요. 예전처럼 오래 산책하지 못하는 날도 생겼고요. 그런 모습을 보다 보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돼요. 그렇다고 아직 오지도 않은 이별을 미리 걱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 같이 있을 수 있을 때 더 잘해주려고 해요. 한 번 더 산책하고, 좋은 것을 먹이고, 가끔 차에 태워 함께 드라이브를 가는 것.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늘 함께 보내는 시간을 잘 챙기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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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Playground> 커버

제 인생에 시엘이 남긴 가장 큰 흔적을 하나 고르라면 역시 ‘우리 집 강아지 귀여워’라는 노래예요. 시엘이 때문에 만든 곡이고, 제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노래이기도 해요. 앨범 커버에도 시엘이 사진을 썼어요. 원래 생각해둔 다른 콘셉트도 있었지만, 첫 정규 앨범은 제 음악 인생에 오래 남을 작품이잖아요. 그래서 지금 제게 가장 의미 있는 존재를 남기고 싶었어요. 저는 음악을 평생 하고 싶어요. 앞으로 만드는 음악에 그때그때의 제가 계속 남을 거예요. 시엘이와 함께한 시간은 이미 제 음악 커리어에 있고요. 언젠가 시엘이와 헤어지는 날이 오더라도 노래가 남아 있으니, 어딘가에서는 계속 시엘이와 이어져 있는 기분이 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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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돈을 모읍니다. 모든 일을 미리 예상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 왔을 때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요. 음악을 계속 만드는 것. 그리고 시엘이 저를 필요로 하는 순간 곁에 있어주는 것. 지금 저에게 자산 관리는 그 두 가지를 오래 지켜가기 위한 준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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