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가계일기 100개의 가족에게는 돈을 쓰는 100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1인 가구와 신혼부부,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한 달 지출은 금액은 같더라도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죠. 우리 곁의 다양한 가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가계를 꾸려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젊은 가장의 경제적 독립
공간 디자이너 유기석
저는 서울에서 빈티지 숍을 운영하는 공간 디자이너 유기석입니다. 저희 집은 어머니와 동생, 삼촌과 숙모, 사촌동생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저는 지금 따로 나와 혼자 살고 있고요. 독립은 꽤 일찍 시작했어요. 스스로 꾸려가는 편을 좋아했거든요. 군대를 전역한 뒤 대학교 앞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했는데, 막상 혼자 살아보니 꽤 잘 맞았어요. 그렇게 시작한 자취가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저에게 경제적 독립은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혼자 사는 것보다 조금 넓어요. 내가 번 수입으로 현재를 꾸리고, 앞으로를 계획하고, 내가 내린 선택의 결과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해요. 하나를 더한다면, 제가 아끼는 사람들까지 챙길 수 있는 상태예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는 것을 넘어 내가 원하는 인생과 가까운 이들의 하루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힘. 그 정도가 되어야 독립했다고 느껴요.

내 삶을 책임지는 법
제가 사업을 하면서 중요하게 지키는 첫 번째 원칙은 사업 자금과 개인 자금을 섞지 않는 거예요. 공간 디자인은 프로젝트마다 큰 금액이 오가요. 통장 잔액만 보고 잠시 부자가 된 기분에 빠지기 쉬운 업종이죠. 하지만 제 계좌에 찍혀 있다고 전부 제 몫은 아니에요. 그래서 더 세밀하게 구분하려고 해요. 사업용 통장과 개인 통장을 따로 쓰고, 카드도 나눠 사용해요. 심지어 지갑도 두 개예요. 하나는 업무용, 하나는 개인용이에요. 조금 번거롭더라도 어디에서 얼마가 들어오고 나갔는지 확실하게 보여야 마음이 편해요. 지출에서 가장 큰 부분은 임대료예요. 제가 사는 집이 월세이고, 사무실 겸 빈티지 숍으로 사용하는 공간도 임차하고 있으니까요. 두 곳의 월세가 나란히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대신 요리를 좋아해서 식사는 웬만하면 직접 해 먹어요. 덕분에 식비는 비교적 적은 편이에요. 저축은 금융투자보다 적금을 선호하고요. 여유 자금이 생기면 투자 상품을 찾기보다 지금 하는 일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편이에요.

돈을 대하는 기준은 중학생 때부터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어머니가 한 가지를 알려주셨어요. 수입의 일정 부분은 저축하고, 무언가를 사기 전에는 이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그냥 ‘소유하고 싶은 것인지’ 구분해보라는 거였어요. 물론 저도 취향이 강해서 갖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결제할 때가 있어요. 사람인데 어떻게 매번 필요하기만 하겠어요.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제게 돈을 잘 관리한다는 건 무조건 아끼는 일이 아니에요. 어디에 쓰고 싶은지, 어디에서는 멈춰야 하는지 판단하는 거예요.
내 몫과 가족의 몫 사이
어머니를 챙기기 시작한 건 사업에서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서부터예요. 동생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 일본 생활을 시작했을 때고요. 저희는 아버지가 없는 집이라 자연스럽게 제가 조금 더 가장 역할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거창하게 ‘이제 내가 책임져야겠다’고 선언한 건 아니에요. 일을 하고 여유가 조금씩 생기니까 제가 드릴 수 있는 만큼 돈을 건네기 시작했어요. 처음 어머니께 돈을 보내고 느낀 감정은요? 뿌듯했어요. 제가 만든 공간과 결과물로 번 수입을 어머니와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지금까지 받아온 것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돌려드리는 기분도 들었고요. 오히려 그때부터 제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어요.

지금은 어머니께 한 달에 5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를 보내드려요. 액수는 매번 달라요. 일이 잘 풀린 달에는 조금 더 보내고, 지출이 많은 때에는 자연스럽게 줄여요. ‘매달 무조건 얼마’라는 규칙은 만들지 않았어요. 동생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돕고 있어요. 일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동생이 가입한 적금의 납입금 70만원을 매달 대신 내주고 있어요. 동생의 인생을 제가 책임지겠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낯선 곳에서 자기 일상을 만들어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이런 지출이 부담스럽거나 아깝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즐거워요. 여유가 생겼을 때 소중한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는 기분 좋은 일이거든요. 다만 우선순위는 있어요. ‘지금의 내 생활, 앞으로의 내 삶, 가족에게 보내는 돈’ 순서에요. 조금 냉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순서가 가족을 오래 챙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흔들리지 않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고, 제 일이 잘되어야 더 넉넉하게 나눌 수도 있으니까요. 무리해서 큰돈을 한 번 보내는 것보다 형편에 맞게 오래 이어가는 쪽을 택해요. 수입이 줄면 액수를 낮추고, 일이 잘되면 조금 더 드려요.

인생을 즐기기 위한 돈
직접 벌고 제 살림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보인 것도 있어요. 생각보다 어머니가 저와 동생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오셨다는 사실이에요. 저희 어머니는 취향이 아주 분명한 분이에요. 흑인 음악과 테크노를 좋아하시고, 혼자 조용히 절에 다니는 것도 즐기세요. 장거리 운전을 해서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하고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아는 분이에요. 제가 독립한 뒤 어머니가 다시 자기 취향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됐어요. 아들 둘을 키우는 동안 본인이 좋아했던 것들을 꽤 많이 미뤄두셨겠구나 싶었어요. 이제는 하고 싶은 걸 더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작년에도 올해도 어머니를 '워터밤' 공연에 보내드렸어요. 아마 관객 중에서 꽤 연령대가 높은 축에 속하실 거예요. 음악 좋아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고요. 어릴 때 어머니에게 돈은 '잘 버는 것만큼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배웠어요. 지금의 저는 그 말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어요. 맛있는 걸 함께 먹고, 좋아하는 물건을 사고, 여행을 떠나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경험을 해보는 것. 저는 이런 순간에 쓰는 돈을 좋아해요. 통장에 숫자로 남아 있는 것만큼이나 인생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부모님께 얼마를 드려야 할까’라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고 봐요. 100만원을 드릴 수도 있고, 꽃 한 송이를 살 수도 있어요. 좋은 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고요. 마음의 크기가 꼭 가격표를 따라가는 건 아니잖아요.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저는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지금 제 일에는 꽤 좋은 파도가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스튜디오도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아요. 지금은 가능하면 제대로 이 흐름에 올라타고 싶어요. 경제적인 목표도 여러 가지예요. 집도 장만하고 싶고, 어머니께도 집을 마련해드리고 싶어요. 사업도 더 키우고 싶고요. 욕심이 좀 많은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의식주를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지금은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와 빈티지 숍을 운영하면서 그중 일부를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느껴요. 앞으로는 식문화와 관련된 일도 꼭 해보고 싶어요. 베이킹을 하는 동생과 언젠가 함께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고요. 공간과 패션, 음식을 연결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하나씩 완성해가는 것이 오랫동안 품어온 목표예요.

지금 제게 가장 소중한 건 제가 하는 일과 일하며 만들어가고 있는 현재에요. 돈을 관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많이 모으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움직일 수 있는 선택지를 확보하는 일이 더 중요해요. 오늘의 생활을 지키고, 다음을 준비하고, 그 안에서 제가 사랑하는 이들과 나눌 몫도 남겨두고 싶어요. 제 인생과 가족의 인생은 완전히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아요. 제가 안정적으로 오래 일하고 즐겁게 살아갈수록 주변에도 더 많은 것을 건넬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잘 살고 싶어요. 저만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 잘 나누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