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한 낭만 사진가의 창업일기

32세 포토그래퍼 김덕호의 투자 연습

서른의 투자 연습 일도, 돈도, 미래도 아직 서툴지만 그래서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이, 서른. 30대에 접어든 3명에게 커리어와 투자에 대해 물었습니다.

32세의 김덕호는 3D 렌티큘러 스튜디오 ‘글리치’를 운영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장면이 달라지는 렌티큘러 사진을 만들고, 직접 개발해 특허를 낸 기술로 브랜드 촬영도 한다. 귀엽거나 조금은 ‘킹받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다.

글리치스튜디오 렌티큘러 사진
글리치스튜디오의 렌티큘러 사진

사진관을 열기 전에는 4년 동안 투잡과 쓰리잡을 병행하며 창업 자금을 모았다. 문을 연 뒤에는 월세를 내지 못한 달도 있었고, 끼니를 줄여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만두지 않았다. 낯선 이미지를 알아보고 자신의 취향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촬영 수입만 바라보던 포토그래퍼가 이제 사진관이라는 또 하나의 수입원을 운영한다. 수입의 70%를 저축하고, 전년도 매출을 살펴 올해의 지출을 정하며, 사업용 통장과 개인 통장도 나눠 쓴다. 돈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이 자산 관리를 시작한 이유는 결국 사진이다. 김덕호에게 돈은 성공의 기준이 아니다. 이미지를 만들고, 좋아하는 일을 오래 이어가기 위한 도구다.

Chapter 1. 사진은 수확하는 일

김덕호가 사진을 시작한 계기는 우연에 가까웠다. 고졸 취업에 실패한 뒤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찾다가 사진학과를 발견했다. 부모님이 포도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며 자란 그에게 사진은 낯설지만 매력이 있는 일이었다. 농사는 한 해를 기다려야 결과를 얻지만, 사진은 셔터를 누른 뒤 곧바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른 성취감이 김덕호를 사진가의 길로 이끌었다.

Q. 직접 개발하고 특허까지 낸 기술로 렌티큘러 사진관을 열었어요. 남들과 다른 촬영 방식을 시도한 이유가 있었나요?

김덕호: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정지된 사진 안에 움직임과 입체감을 담는 일이었어요. 일반적인 사진과는 다른 역동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촬영 방식을 직접 개발하게 됐어요. 특허도 받았고요. 제가 만드는 이미지는 움직임이 많은 스포츠 브랜드와 특히 잘 맞아요. 기술의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어서 엄브로, 나이키, 조던, 아디다스, 휠라 같은 브랜드와 작업했어요. 브랜드 촬영이든 사진관 촬영이든 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는 점은 같아요. 제 취향과 맞지 않는 작업은 되도록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도 크게 다르게 느끼지는 않아요.

Q. 일이 취미가 되면 즐겁기도 하지만, 업무가 가중되어 생기는 부작용도 크지 않나요?

김덕호: 오전에는 운동하고 오후에 출근해요. 오래 일하려면 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 제 삶의 원동력이에요. 가장 사랑하는 취미이면서 일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사진관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영감을 받아요. 촬영을 준비하며 예상하지 못했던 표정이나 움직임을 발견할 때가 많은데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이미지가 나오기도 해요. 외부 브랜드 촬영과 사진관 일은 모두 창작 활동으로 느끼고 있어요. 사람과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결과도 달라져서 재밌어요. 반복되는 일이라기보다 계속 새로운 장면을 만드는 일에 가까워서 여전히 즐거워요.

Chapter 2. 렌티큘러 사진관을 창업하다

글리치에서는 일반적인 사진관과 조금 다른 이미지를 만든다. 렌티큘러 기술을 활용해보는 방향에 따라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이 달라지는 입체 사진을 제작한다.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1982년에 출시된 ‘님슬로 3D’ 필름 카메라였다. 김덕호는 이 카메라를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MLB 선수의 입체 포토카드를 제작하는 데 활용됐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기존의 렌티큘러 사진은 주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굿즈로 대량 제작됐다. 김덕호는 평범한 사람도 사진 속 주인공이 되고, 자신만의 입체 사진을 한장씩 소장할 수 있기를 바랐다.

Q.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은 기회처럼 보이면서도 조금 수상하잖아요. 렌티큘러 사진관을 실제로 열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나요?

김덕호: 기존에 없던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는데, 제 눈에는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재미있는 작업을 왜 아무도 하지 않는지 궁금했어요. 남들이 안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동료 사진가들과도 고민 상담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안 하는 게 아니라 아직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어요. 조금 자신감 넘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제가 만든 이미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주변에서도 ‘너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잘할 거라는 응원도 있었어요. 렌티큘러 사진은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대부분 대량 굿즈를 만드는 데 활용됐어요.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이 아니라 일반 손님도 렌티큘러 사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의 얼굴과 움직임을 담은 입체 사진을 한 장씩 만들어주는 사진관이라면 충분히 시장에서도 또 개인들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봤어요.

Q. 창업을 서두르지 않고 오랫동안 준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덕호: 처음부터 큰 대출을 받아 시작하기보다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준비하고 싶었어요. 사업을 계획한 뒤 4년 정도 투잡을 했고, 일이 많을 때는 쓰리잡까지 병행하면서 자금을 모았어요. 그렇게 창업에 필요한 자금 대부분을 직접 마련했어요. 전체 자금의 약 20%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저금리로 대출받았고요. 대출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리스크를 줄여 시작하려고 했어요. 준비 기간이 길었지만, 그동안 촬영 일을 계속하며 기술도 다듬을 수 있었어요. 돈만 모은 시간이 아니라, 제가 만든 이미지가 실제 사진관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 확인한 시간이었어요.

Q. 생소한 렌티큘러 사진을 손님들에게 설명하는 일이 예상보다 어려웠을 것 같아요.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나요?

김덕호: 이미지를 처음 본 사람들은 신기해했지만, 신기하다고 결제를 하는 건 아니었어요.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사진이 어떤 것인지, 왜 직접 촬영하고 소장할 만한지 설명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 과정에서 월세를 내지 못한 달도 여럿 있었고, 굶은 날도 많았어요. 창업 전에는 제가 좋아하고 확신하는 이미지라면 사람들도 금방 알아봐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한 사람씩 천천히 납득시키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도 사진관을 찾아온 손님들이 결과물을 보고 좋아하고, 제 취향을 인정해 주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때는 기분이 정말 짜릿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 제 이미지를 알아봐 주면 포기할수 없어요.

Chapter 3. 투 잡, 자영업자의 불규칙한 수입 관리법

여느 낭만주의자처럼 김덕호는 돈이 삶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많은 돈이 없어도 괜찮다고 여겼다. 생각이 달라진 것은 오히려 일이 더 좋아지면서부터였다. 시도하고 싶은 촬영이 생길수록, 아이디어가 샘솟을수록, 새로운 기술과 장비가 필요해졌다. 머릿속의 이미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Q.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일을 더 좋아할수록 돈이 필요해졌다는 말이 아이러니해요.

김덕호: 원래도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제가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요. 그런데 사진 일이 점점 더 좋아질수록 새로 개발하고 시도해보고 싶은 이미지가 많아졌어요. 새로운 촬영 방식도 시험해보고 싶고, 필요한 장비도 생기고, 작업 공간도 필요해졌고요.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과 실제 결과물을 만드는 것 사이에는 결국 비용이 들어가더라고요. 돈을 많이 버는 것 자체가 목표라는 소리는 아니에요. 하고 싶은 작업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돈을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지금도 돈은 목적이라기보다 제가 상상한 이미지를 현실로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에 가까워요.

Q. 프리랜서와 자영업자의 통장에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그대로 찍히잖아요.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원칙으로 돈을 관리하나요?

김덕호: 촬영 일과 사진관 모두 성수기와 비수기가 분명하게 있어요. 매달 같은 금액이 들어오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수입이 발생했을 때 최대한 많이 남겨두려고 해요. 지금은 매달 수입의 70% 정도를 저축하고 있어요. 올해 매출만 보고 소비하지도 않아요. 전년도 같은 시기 매출과 비교해 앞으로 수입이 어느 정도 발생할지 예상해요. 지난해 어느 달부터 일이 줄었는지, 언제 다시 촬영이 많아졌는지를 살펴보면 올해의 흐름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요. 수입이 적은 달이 갑자기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불안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흐름이라고 보면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어요. 프리랜서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저축한 돈은 비수기 작업과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안전장치에 가까워요.

Q. 사업 소득과 개인 자산은 완전히 나누지 않지만, 지출 통장은 분리하고 계신가요?

김덕호: 사업을 통해 발생한 소득이 제 개인 자산이기 때문에 소득 자체를 완전히 분리하지는 않아요. 대신 사업용 지출과 개인 지출은 통장을 나눠서 사용해요. 그래야 사업을 운영하는 데 실제로 얼마가 들어가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창업하기 전에는 매출만 많이 나오면 사업이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운영해보니 매출보다 더 중요하게 봐야 하는 돈이 많았어요. 임대료와 관리비처럼 매달 정기적으로 빠져나가는 비용이 있고, 장비나 재료에 들어가는 돈도 있어요. 간이과세자에서 일반과세자로 전환되면서 부가세와 공제율도 달라졌어요.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고 해서 전부 쓸 수 있는 돈은 아니더라고요. 매출이 늘어나는 것과 실제로 남는 돈이 늘어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창업 후에 배웠어요.

Q. 외부 촬영과 사진관이라는 두 수입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실제로 두 일을 병행하는 건 어떤가요?

김덕호: 외부 브랜드 촬영과 사진관 촬영은 손님과 작업 환경은 다르지만, 두 작업 모두 제가 개발한 기술을 사용해요. 그래서 완전히 다른 일을 동시에 한다기보다 같은 방식의 작업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이어가는 느낌이에요. 무엇보다 제 취향과 맞지 않는 작업은 진행하지 않으려고 해요. 돈을 위해 전혀 원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하면 제가 좋아하던 일이 금방 싫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촬영 일과 사진관 운영이 모두 제 취향 안에 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병행하는 일이 크게 버겁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어요.

Chapter 4. 투자 실패가 남긴 것

낭만을 좇는 김덕호는 주식 투자도 낭만적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주가가 크게 하락했을 때 유튜브 영상을 보고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마침 소득이 많이 발생했고 시장도 빠르게 상승하던 시기였다. 투자금의 절반가량은 어린 시절의 꿈과 연결된 기업에 넣었다. 우주여행을 꿈꾸며 버진 갤럭틱을 샀고, 한때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었던 마음으로 비욘드 미트에 투자했다. 결과는 80%가 넘는 손실이었다.

Q. 버진 갤럭틱과 비욘드 미트에 투자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기업보다 자신의 로망에 투자한 셈인가요?

김덕호: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후 주가가 크게 떨어졌을 때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투자 관련 영상을 보게 됐어요. 당시에는 소득도 많이 발생했고 주식시장도 계속 오르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저도 투자를 시작하게 됐고요. 투자금의 50% 정도를 제 과거의 꿈과 연결된 기업에 넣었어요. 어린 시절에는 우주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버진 갤럭틱에 투자했고, 한때 비건이 되고 싶었던 마음으로 비욘드 미트도 샀어요. 기업의 성장성을 냉정하게 살폈다기보다 저의 로망에 투자한 거죠. 결과적으로 80%가 넘는 손실을 봤어요. 투자할 때는 개인적인 애정이나 낭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 뒤로는 과거에 좋아했던 것보다 지금의 상황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Q. 한 차례 크게 잃고도 투자를 완전히 그만두지는 않았어요. 지금은 무엇을 위해 자산을 모으고 있나요?

김덕호: 자영업자는 직장인처럼 안정적인 퇴직금이 없잖아요. 일을 쉬거나 그만두게 됐을 때 자동으로 마련되는 돈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ISA와 IRP 같은 상품을 활용하고 있어요.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면서 장기적으로 노후 자산을 모으려는 목적이에요. 한 번의 투자로 큰 수익을 내기보다, 일하는 동안 꾸준히 자산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어요. 과거에는 좋아했던 꿈을 따라 종목을 선택했다면, 지금은 현재의 생활과 미래의 안정에 더 관심을 두고 있어요. 당장 새로운 작업을 위해 필요한 돈도 중요하지만, 계속 일할 수 없는 시기를 준비하는 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덕호는 여전히 자신을 사업가보다 포토그래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 좋은 작업을 이어간다면 돈과 사랑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 그에게 돈은 목표가 아니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좋아하는 일을 오래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