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이력서📮 복잡한 금융 생활 속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까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인생 선배인 부모님에게 물었습니다.

나의 엄마, 최숙희 씨 이야기
최숙희 씨는 1954년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4녀 3남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린 숙희 씨의 하루는 들로 소를 데리고 다니고, 밭을 매는 일로 꽉 차 있었다. 돌봐주는 사람도, 집에서 글공부를 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열한 살이 되자 수업을 따라 가기 어려워졌고,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한글을 다 깨우치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글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들을 대학 보내느라 여력이 없었다. 둘째 딸의 배움은 하염없이 뒤로 밀려났다. 2018년, 당시 63세였던 엄마는 내게 한글 학원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글을 몰라 서러운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던 엄마는 한글을 알기 위해 몰두했다. 하루에 A4 용지 네 장을 앞뒤로 거뜬히 쓸 만큼 모든 글자를 옮겨 적었다.
“니는 딸이니까 니한테만 말하지” 가족들 몰래 한 한글 공부
초등학생 시절, 나는 엄마를 앉혀두고 가정통신문을 큰 소리로 읽었다. 그렇게 나는 공과금 고지서를 읽고, 처방받아온 약의 부작용을 읽고, 길을 찾아주고, 어려운 말을 해석하며 자랐다.

- 한글을 몰라서 제일 속상할 때가 언제였어? 직장 다니고 싶었는데 못 다닌 거. 회사 가면 뭐든 쓰라고 할까 봐, 그거이 겁이 나서 못 간 거야. 그랑께 맨날 이러고 힘든 일만 했지.
- 한글 학원 다닐 때는 어땠어? 같이 다니던 사람들이랑 진짜 좋았어. 연신내 사는 사람이 있어. 학원 끝나고 거기 가서 밥 먹고 오고 그랬지. 거기 애기가 우리 막내하고 동갑인데 손녀한테 받아쓰기 시험도 보고 한대. - 한글을 잘 쓰게 되면 뭐 하고 싶어? 너하고 며느리한테 탁탁 편지 써주고 자픈디, 쓰지를 못 하겄당게. 말을 지어서 쓸 줄을 몰라 갖고. 무엇이든 다 쓰고 싶지. 공책에다가 줄줄줄. 나는 쓰는 것이 중요한디, 왜 쓰지를 못할까. 그라고 우리 막내가 “할머니 책 읽어줘.” 하면 아무 때나 읽어줄 수도 있고. 하고 싶은 거야 많지.
돈과 시간, 돌봄의 상관관계
엄마는 아들 집에서 살면서 손주들을 봐주고 있다. 하루에 다섯 번 밥을 차린다. 손주들이 어지른 집을 정리하고, 산더미같이 쌓인 빨래와 설거지를 동시에 해낸다.

- 엄마의 하루 일과에 대해서 얘기해줘. 아들 집에서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밥하지. 애들 밥 주고 막내 학교 데려다주고 나면 9시야. 밥 한술 먹고 우리집에 갔다 오고, 애들 학원 보내고 간식 챙겨주고 나면 7시. 느그 오빠랑 언니랑 저녁 밥 주고 애들 목욕 시키고 그러면 9시 돼버려. 이제 10시 넘어서 책 좀 보려고 앉아 있으면 졸려 죽겠어. 그래서 책도 못 봐. - 다시 한글 배우고 싶지 않아? 학원을 다시 다녀야 되겄어. 처음 아들 집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계속 공부를 했거든? 일기장에 일기도 쓰고. 애들이 볼까 봐 책장에다 딱 감춰두고 그렇게 썼어. 언제는 며느리가 막내 받아쓰기를 봐주더라고. 그럼 나도 혼자 따라서 쓰고 그랬어. 그렇게까지 했는데 어느 순간에 딱 안 해버렸네. 왜 안 했는지 모르겠어.
하루를 꽉 채워 일을 했는데, 책상에 앉아 공부할 체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엄마에게는 엄마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가만히 앉아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좋아하는 트로트 방송을 보며 웃는 시간 말이다. 그렇게 체력이 서서히 회복되면, 다시 연필을 들고 공책에 글자를 써 내려갈 힘이 생길 것이다.
연필을 들고 밖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
처음 엄마를 인터뷰하던 날, 엄마는 창문을 닫으라고 말했다. “남이 들을까 무섭다.” 세상에 절대 밝히고 싶지 않았던 비밀을 처음 꺼내 놓던 날 엄마는 그렇게 방어적이었다. 엄마는 자기가 살아온 시간을 들려주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정리한 글이 완성될 때마다 엄마에게 읽어주기도 했다. 그럼 엄마는 “아이고 못살아.” 하며 웃다가 눈물을 훔치곤 했다.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가 다르게 들리던 순간이었다.

- 처음 한글 학원에 갔을 때 어땠어? 나만 글을 모르는 게 아니니까 서로 감싸고 너무 좋았어. - 엄마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위로를 받는 사람들도 있을거야. 그럼 돈과 시간이 있다면, 뭘 가장 하고 싶어? 나는 배우러 다니는 게 제일 좋아. 수영도 배우고 요가도 하고 노래 교실도 나가고. 옛날에 노래방 가면 글자를 못 읽어서 노래 한 자락도 못 불렀어. 저걸 어떻게 따라서 저렇게 할까, 맨날 그랬지. 친구들 만나고 밥도 한번씩 사주고 그런 거 하고 싶어.
엄마가 이토록 배움에 간절한 건 자신의 세상이 확장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한글을 몰랐던 엄마는 세상을 원하는 만큼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나는 이제 엄마가 마음껏 배우고 자신을 아낌없이 돌봤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걸 나중으로 미루지 말자고 힘껏 제안하고 격려하고 싶다. 그렇게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엄마가 쓴 편지가 내 앞으로 도착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이 콘텐츠는 '딸세포출판'과 함께 만들었어요. 딸 김소영 씨가 질문하고 엄마 최숙희 씨가 답변했어요.
함께 읽고 싶은 분에게 공유해주세요

-경품은 당첨자분들의 정보 취합 후 일괄 배송될 예정이에요. (수급 상황에 따라 다른 제품으로 변경될 수 있어요) -당첨자 발표 후 제출 기한까지 정보를 입력하지 않을 경우 당첨이 취소될 수 있으니, 꼭 발표일을 확인해 주세요. -이벤트 문의사항은 카카오페이 고객센터(1644-7405)로 문의 부탁드려요. -본 이벤트는 당사의 사정에 따라 사전 고지 없이 변경 또는 조기 종료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