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영창: 1956년 창립한 악기 회사로 삼익과 함께 한국 피아노 산업을 이끌었어요. 한때 피아노 생산량 세계 1위를 달성할 정도로 잘나갔지만,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다가 2004년 파산해요. 2006년 HDC그룹에 인수되면서 지금의 HDC영창이 되었어요.
어릴 시절 피아노를 쳐 봤다면 꽤 익숙한 이름, 삼익악기! 그런데 악기를 만들던 회사가 양궁 활도 만들었단 사실 알고 계셨나요? 삼익은 어쩌다 활까지 만들었을까요?
우리나라 최대 악기 회사
삼익은 1958년 ‘삼익피아노’로 출발했어요. 90년대까지만 해도 피아노는 입학이나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기 때문에 HDC영창과 함께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죠. 이후 ‘삼익악기’로 회사 이름을 바꾸면서 바이올린, 기타, 리코더, 단소, 하모니카 등 다양한 악기도 만드는 회사로 성장했어요.
하지만 점점 주택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아져 피아노가 설 자리가 사라져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컴퓨터의 발전과 대중화로 인기 있는 선물 타이틀도 빼앗기게 되죠. IMF 외환위기까지 겪으며 국내 피아노 생산량은 약 1/10로 쪼그라들게 돼요.
세계 1위 피아노 회사도 손에 넣을 뻔 했지만
국내 피아노 시장이 어려워지자 삼익은 해외 진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해요.
당시 국내에서는 삼익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영창을 인수하려고 시도했어요. 덩치를 불려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였지만 독점을 우려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를 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어요.
공격적으로 해외 기업 쇼핑에 나선 삼익은 한때 세계 1위 피아노 회사, 스타인웨이도 인수할 뻔했어요. 3년간 스타인웨이 주식을 샀고 삼익은 지분율을 30%대까지 높였어요. 하지만 미국 사모펀드가 막대한 돈을 들고 인수 싸움에 끼어들어요. 결국 삼익은 인수를 포기하고 가진 지분을 모두 사모펀드에 팔아버려요. 다행히 약 850억 원에 샀던 지분을 1,700억 원에 매각하면서 익절에는 성공해요.
한국 국가대표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활
1975년 삼익은 회사 내에 양궁 사업부를 만들었는데요, 양궁 사업에 꽤 진심이어서 1990년에는 아예 ‘삼익스포츠’라는 회사를 만들어요.
🏹당시 우리나라 국가대표 남자 선수들은 주로 미국 호이트(Hoyt) 활을 사용했어요. 그런데 한국 선수들이 너무 잘하자, 호이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직전 미국 선수들에게만 최신 기술이 적용된 활을 제공하겠다고 밝혀요. 결국 이 때문인지 남자 단체전에서 미국이 금메달을 목에 걸어요. 이에 대한양궁협회는 국내 모든 경기에서 한국산 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규칙을 만들어요. 덕분에 삼익스포츠는 안정으로 수입이 생겼고, 전 세계의 모든 소재를 실험하고 활 제조 기술을 개발했어요.
삼익이 만든 활의 세계적인 첫 무대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었는데요. 여기에서 우리나라 남녀 양궁대표 선수 6명 중 4명이 삼익스포츠의 활을 들고 나가 금메달을 따며 삼익의 활이 인기를 얻기 시작해요. 이후 세계 양궁 선수들 사이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활’이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는 128명의 선수 중 50명 넘는 선수가 삼익 활을 사용했어요.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이후 호이트의 역습이 시작돼요. 막대한 자본과 물량 공세로 양궁 활 시장을 장악하죠. 불어나는 개발 비용을 더 감당할 수 없던 삼익스포츠는 경쟁에서 밀렸고, 결국 2015년 파산하고 말아요.
🥇현재 활 시장에선 윈엔윈(WIAWIS)이라는 국내 기업이 든든히 버티고 있어요. 일본 야마하(Yamaha)의 활 사업부를 인수하고, 양궁용 활에 신기술과 신소재를 접목해 현재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최근 삼익악기는 피아노 고급화와 기타 시장 공략에 집중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에요. 2017년에는 지역냉난방 업체를 인수해 집단에너지 사업에 진출하기도 했어요. 국가대표 활까지 만든 국가대표 피아노 회사, 과연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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